긴 일정을 끝내고 밤늦게 귀가하는 차 안에서 였습니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한 직후였는데 그녀가 잠 가득한 목소리로
의자를 젖히며 말하더군요.
"절대로 그 얘기가 졸리워서는 아냐"
그리곤 바로 스르륵 잠 속으로.
그 순간 평생 그녀가 사랑스러워야 할 결정적 이유 하나가
내 마음 속에 문신처럼 추가된 느낌이었습니다.
살다보면 내게 결정적 순간이란,
누군가에겐 평범하고 대수롭지 않은 시간입니다.
반대로 내겐 아무 감흥도 없는 일이
어떤 이에겐 벼락 같은 시간이구요.
그러니 우리의 일상 중 결정적이지 않은 순간들이란
단언컨대, 없고 말구요.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 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 때 그 사람이
그 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정현종<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詩人이 그렇다니 토 달지 않고 순하게 받아 들였지.
"사랑의 극치에 빠져
죽음마저 미치도록 달콤한 한때라면
사람이 꽃이고
내 몸이 절정인 순간이다"
-박이화<색, 계>
무려 제목이 <색, 계>인데 마무리마저 이러니 뭐라 그래.
최불암 아저씨 톤으로 어휴! 할 수밖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유모차 한 대가 밀고 들어 온다
오이씨 같은 잇빨 두 개가 보일락말락 평화롭게 누워있는 아가
무겁게 입 다물고 있던 엘레베이터 안 공기가 환해진다"
-한창옥<입석과 좌석>
아가의 힘, 그거 알지?
우린 모두 한때 그 아가였다잖아.
"산 밑 밭 언저리가 검게 그을려 있다
밭둑에 잠깐 풀어놓은 불이
산으로 도망치려 했던
흔적이다
밭주인은 생솔가지를 꺽어 불을 얼마나 두들겨 팼을까
벌떡이던 심장"
-고영민<거웃>
살다보면,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홀로 그렇게 다급한 순간들 있지.
"우리가 사랑을 나눌 때
달빛을 받아 은회색으로 반짝이는 네 귀에 대고 나는 속삭인다
너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너는 지금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가"
-심보선<새>
그런 결정적 순간에 '오빠 믿지?' 같은 대사는 날리면 안되는데.
바로 까여 그럼.
"아이의 검은 동공이 내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나는 지금 저 아이에게 꼼짝할 수 없다
얼마 후 아이는 검은 눈동자의 포박을 풀어주면서
만족스레 엄지손가락을 빨고 있다
내게서 무엇을 가져간 것일까"
-정복여<귀가>
그런 치명적 매혹의 순간이라니.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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