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수의 '마음詩처방'

나는, 저녁이면 좋겠어요

힐링Talk 2014. 2. 11. 18:00

 

 

만약 선거 슬로건만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저 같은 경우엔 저녁이 있는 삶에 무조건 한 표입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요.

삶의 요체는 평범하고 편안함일 겁니다.

우리에게 저녁이 있는 이유가 바로 그렇다고 저는 느낍니다.

몸과 마음 모두에 저녁이 있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종일 동동거리던 해가

앞산 등성이에 슬며시 부은 발을 걸치는 시간

 

고슬고슬 밥알 오물거리며

아랫목에 배 깔고 엎드린 내가 일기를 쓰던 시간

 

세상 모든 기도가 숨 죽여

걸음 느린 밤을 기다리는 시간"

-이경미<저녁 무렵>

 

그 평화와 안온이라니.




 

"오지의 어디쯤, 등 굽은 길을 걸어오신 듯한 스님 한 분

국숫집에 드셨다. 막국수 한 그릇 시키고 망연히 앉아

문 밖에 내다보는 눈길이 몇 겹의 산을 넘고 또 넘는지 고요하다"

-김창균<메밀국수 먹는 저녁>

 

우걱우걱 먹방에선 결코 느낄 수 없는 고요한 포만감.

막국수 한 그릇 땡기는 저녁.

 




"흰 상보가 폭포처럼 식탁에서 흘러내렸다

정갈한 사기 접시 위에

홍시 빛 노을이

차려져 있는 둥근 식탁"

-허만하<저녁노을 식탁>

 

다정한 이와 그런 저녁 식탁에 앉아 있으면 얼마나 좋게.

내가 식탁 차리는 사람이면 더 좋지.





"울리다, 적시다, 덮어주다, 쓰다듬다, 재우다 같은 동사를 앞세우며 간다

 

낮다, 길다, 무겁다, 둥글다, 느리다, 너그럽다 같은 형용사들이 뒤따라 간다"

-김선태<저녁 범종소리>

 

저녁 범종소리가 그렇다네.

그럼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부석사라도 가야지.





"그런 헐값의 밤 속에서 호주머니 속 수첩에 기록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

결코 길들일 수 없었던 통증의 저녁도 순한 아이처럼 길든다

아픈 시대처럼, 말을 담고도 침묵하는 책장처럼"

-이기철<저녁 빛에 마음 베인다>

 

가만히 불러봤더니, 진짜 마음이 순해지던 걸.

 






"생에 덤이 있다면,

이레만 엿가락 떼 주듯 준다면,

처음 이틀은 아침 햇살처럼 맘껏 웃으리

그 다음 사흘은 정오의 햇살처럼 철저히 사랑하리

남은 이틀은 너그러이 용서하는 한 폭의 저녁놀 되리"

-김장호<본제입납本第入納>

 

결정했어.

, 모두 저녁놀.

 

 



"내가 살던 강마을 언덕에

별정 우체국을 내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개살구 익는 강가의 아침 안개와

초저녁 미루나무가 쓸어내린 풋별 냄새와

싸락눈이 싸락싸락 치는 차고 긴 밤

넣을 봉투를 구할 재간이 없어 그만둔 적이 있다"

-박성우<옛일>

 

와우!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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