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수의 '마음詩처방'

결정적 순간이 있지요

힐링Talk 2013. 11. 19. 16:00

긴 일정을 끝내고 밤늦게 귀가하는 차 안에서 였습니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한 직후였는데 그녀가 잠 가득한 목소리로 

의자를 젖히며 말하더군요.   

"절대로 그 얘기가 졸리워서는 아냐" 

그리곤 바로 스르륵 잠 속으로.   

그 순간 평생 그녀가 사랑스러워야 할 결정적 이유 하나가 

내 마음 속에 문신처럼 추가된 느낌이었습니다.   


살다보면 내게 결정적 순간이란, 

누군가에겐 평범하고 대수롭지 않은 시간입니다. 

반대로 내겐 아무 감흥도 없는 일이 

어떤 이에겐 벼락 같은 시간이구요. 


그러니 우리의 일상 중 결정적이지 않은 순간들이란

단언컨대, 없고 말구요.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 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 때 그 사람이

그 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정현종<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詩人이 그렇다니 토 달지 않고 순하게 받아 들였지. 




"사랑의 극치에 빠져

죽음마저 미치도록 달콤한 한때라면

사람이 꽃이고

내 몸이 절정인 순간이다"

-박이화<색, 계>


무려 제목이 <색, 계>인데 마무리마저 이러니 뭐라 그래.  

최불암 아저씨 톤으로 어휴! 할 수밖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유모차 한 대가 밀고 들어 온다

오이씨 같은 잇빨 두 개가 보일락말락 평화롭게 누워있는 아가

무겁게 입 다물고 있던 엘레베이터 안 공기가 환해진다

-한창옥<입석과 좌석>


아가의 힘, 그거 알지? 

우린 모두 한때 그 아가였다잖아.




"산 밑 밭 언저리가 검게 그을려 있다

밭둑에 잠깐 풀어놓은 불이

산으로 도망치려 했던

흔적이다


밭주인은 생솔가지를 꺽어 불을 얼마나 두들겨 팼을까

벌떡이던 심장"

-고영민<거웃>


살다보면,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홀로 그렇게 다급한 순간들 있지. 




"우리가 사랑을 나눌 때

달빛을 받아 은회색으로 반짝이는 네 귀에 대고 나는 속삭인다

너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너는 지금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가"

-심보선<새>


그런 결정적 순간에 '오빠 믿지?' 같은 대사는 날리면 안되는데. 

바로 까여 그럼.




"아이의 검은 동공이 내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나는 지금 저 아이에게 꼼짝할 수 없다

얼마 후 아이는 검은 눈동자의 포박을 풀어주면서

만족스레 엄지손가락을 빨고 있다

내게서 무엇을 가져간 것일까"

-정복여<귀가>


그런 치명적 매혹의 순간이라니.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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