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봄밤이면 좋겠어요
봄이 마당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느꼈을 때,
봄밤처럼 설레면 좋겠어요.
봄밤처럼 아늑하면 좋겠어요.
또 봄밤처럼 아득해지면 좋겠어요.
그러다가 아예 내가 봄밤이 되면
더 좋겠어요.
그러라고 봄이 온 거잖아요.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또 피고 지랄이야
이 환한 봄날이 못 견디겠다고
환장하겠다고
"- 박남준<봄날은 갔네>
봄이 출렁! 육덕좋은 몸처럼 그득해 지고
있다는 걸 금방 알겠어.
그런 봄 이제 다 왔다지.
저 모퉁이를 도는 중이래.
태생이 시인, 박.남.준.
첫 문장부터 몰아치듯 이렇게 묻는데 뜨끔하더군.
"꽃만 피면 봄이냐
감흥없는 사내도 품으면 님이냐"
- 최명란<꽃 지는 소리>
아니예요. 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 이성부<봄>
그렇게 공평한 게 있다는 건
참, 다행한 일이야.
시인이 봄 벚꽃을 놓쳤던가 봐.
"올해는 벚꽃을 보지 못했다, 아파트 현관 앞의 벚꽃을
보지 않았을 리 없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기억이 없다
이런 나를 벚나무는 뭐라고 생각할까"
- 손택수<나무의 수사학5>
돌아보니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하는 것들 너무 많은 거라.
올핸, 놓치지 말아야지. 꽃 결심!
삼월에 내리는 눈을 보며 시인이 이렇게 운을 뗐지.
"봄눈은 할 말이 많은 것이다"
- 이문재<삼월에 내리는 눈>
무슨 말인지 대번에 알겠드라구.
할 말 많은 이의 말은 좀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저마다 자기 말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타박부터 할 게 아니고.
나흘 밤 나흘 낮을 열에 들떠 신음하는 아내 곁에서
시인이 손모아 기원하네.
"따뜻한 봄이 오거든
나뭇가지 가지마다 꽃이 피거든
아내여 아내 아내, 어여쁜 아내
꿈 속에서 깨어나듯 피어나거라
"- 민영<아내를 위한 자장가>
그 자장가, 찡허요.
이제, 봄이예요.
"봄밤 연습없이
툭, 하고
꽃이 진다
"- 홍오선<봄밤 연습없이>
삶의 대부분은 느닷없는 것으로 이루어 지나봐.
이별도, 인연도, 성취도, 봄꽃도. 심지어 상처까지도.
연습없이 그냥 살라하네.
어느 봄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