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강자 맞아요
‘시간은 가는 것인가 오는 것인가?’
이맘 때쯤이면 그 질문이 마음에 번지고 또 번집니다.
돌아보면 마지막 승자는 늘 시간이었던 듯 싶어요.
상대가 누구이든 스스로 무릎꿇게 하는 존재.
맞아요, 절대강자.
“외상으로 긋고 가는 커피 값
시간도 외상으로 달아놓고 허드레 것처럼 쓴다"
-노향림<춘방다방>
외상으로 쓰는 시간이라.
시골 옛날다방의 풍경을 들려주는 시인의 눈길이
나그네에게 건네는 따뜻한 물 한 잔 같더군.
단골가게에서 손으로 외상 긋는 표시하며
유유히 걸어 나오는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유쾌하게.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누군가 이 시간에, 눈 빠알갛게
나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영민<꽃눈이 번져>
그래서 잠이 안오는 거였어.
누군가 내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거 받아 주느라고.
불면의 시간들, 그까이 꺼.
"형 서둘러 간 지
겨우 일년 밖에 안 됐는데
마치 형은 이 세상에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세상은 바쁘게 종종 걸음으로 달려가네"
-신현수<붕어빵-범기형에게>
너무 바쁘긴 해. 멈춰서 돌아볼 시간 없으면 짐승의 시간과 뭐가 달라.
다 기억하고 보듬어야 사람의 시간이지.
"춥다,
밤사이 서리가 유골처럼 쌓여
나도 모르게
너를 꼬옥 끌어안고 잠이 들었지"
-고은강<애리조나에서>
살다보면 누구나 추운 시간이 있지.
그런 시간에 꼬옥 끌어안고 잠들 사람 꼭, 있었으면 해.
"하루 종일 혼자 있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사람들 속에서 아침이 왔고,
점심이 왔고, 저녁이 왔다
(....)
혼자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해 오늘 하루 온전히 당신을 그리워하지 못했다
당신에게 편지 한 줄, 비밀 한 줄 쓰지 못했다"
-이은봉<혼자 있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혼자 있는 시간 갖지 못하면 결국, 무너지드라구.
지상의 모든 시간들에게 경배를.
다정한 인사를 건네며.